“캥거루는 벽을 넘었습니다,
동물원의 벽을,
하나님 맙소사, 벽이 어찌나 높던지요,
하나님 맙소사, 세상은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케니지의 소프라노 섹소폰이 울리는 방에서 나는 잠시 전에 읽었던 책에 나
오는 한 구절을 다시 되뇌여 본다.
지난 주 내가 사는 집 근처 중랑구립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내가 몇년 전
신문에서 소개기사를 읽고 누군가에게 생일선물로 주었던 책, 그러나 정작
나는 읽지 않았던 책이었다.
장 도미니크 보비라는 한 남자의 독백에 해당하는 이 책은 그의 사랑하는
두 아이를 위해 쓰여졌다. 어느날 심장계통의 질환으로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의 몸 가운데서 움직여지는 것이라곤 고
개를 돌리는 것과 그의 왼쪽눈을 깜박이는 것 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의 성
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그는 마치 잠수복에 갇힌 것 처럼 꼼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어치료사를 통해 세상을 향해 열린 하나의
창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의 왼쪽눈꺼풀이었다. 그는 왼쪽눈꺼풀을 깜박거
림으로 글자 하나 하나를 표현할 수 있었고(빈도순으로 적힌 알파벳표를 간
호사가 짚을때 원하는 글자에서 눈을 깜박이고 상대방은 그 글자를 받아적
고 계속해서 다음 글자들을 적어나가는 식으로) 170여 페이지의 책을 써내
려 갔다. 1997년 3월 9일 그는 회복되지 못한 채, 그를 둘러싼 잠수복을 벗
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떠나가고 말았지만, 그가 남긴 짤막한 글들은 그가
원하던 대로 남겨진 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나에게도 역시……
– 늘 즐거운 한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