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움을 바칠만한 귀중한 것….

” 자신의 목숨을 바칠만한 귀중한 것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불쌍한 인생이다. 이런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영혼이 죽었고
이를 뒤늦게 증명하는 것이 육체의 죽음이다.(마틴 루터 킹) ”

마틴 루터 킹이 말하는 삶에 대한 열정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리라
오늘도 내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을 알기에 감사하다.

– 늘 즐거운 한빛.

조창현 (2003-05-30 10:16:44)

훗.. 자네는 왜 사는가…
알고 있다니.. 함 얘기 해 주게…
난 아직 오리 무중이거든.. 흠..
늘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데.. 쩝..

이희용 (2003-06-01 03:03:24)

우리가 거울을 볼 때 우리의 모습을 보듯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의 모습(부패하고 나약하고 불완전한)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존재가,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주관하는 하나님의 사랑(자기의 아들을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이기까지 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내 삶의 목표와 방향은 당연히 세워지는 거죠. 구원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왜 죄 없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을까요. 예수는 바로 나를 위해, 대신 죽은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그가 죽음으로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변치않는 사실이자, 영원히 유효한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은 은혜이며 선물인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나의 생활을 주장하던 죄의 권세에 대해서도 죽었습니다. 우리가 죄의 권세 아래 있을 때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만, 죄에서 해방된 이후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기에,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며, 이제부터 나의 삶은 더이상 나를 위해 사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가 나를 위해 죽었기 때문에 그 예수를 나 또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해답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리고 구원 이후, 이러한 삶이 바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에 하루 하루 차츰 차즘 더 예수를 닮아나가는 성화의 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영희 (2003-06-04 06:56:26)

진리는 내 안에 있으니,
내가 곧 부처라고 했는데.
그건 나를 구원해주는건 내 밖의 타자가 아니라
바로 나이며,
탐욕과 이기심 어리석음을 깨치고 진정 자유로와 질때,
이미 내 안에 존재하던 진리를
바로 볼 수 있다는 얘기겠지요.
나도 간혹 특정하지 않은 어떤…절대자에게 기도하는데,
그런 맹세와 다짐을 통해
나를 스스로 가다듬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내 목숨을 바칠만큼 귀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생각이 복잡해 지면서,
두려워집니다.
위대한 사람과 보통사람의 차이겠지요…
하지만, 나는 선과 정의를 지향하고, 늘 성찰하려 노력한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고있습니다…

좀. 우울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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