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김대중 후보는 호남지역의 광주에서 97.3%의 지지율을 기록
했다. 이는 영남지역 대구의 이회창 후보지지율 72.6%와는 달리 타 후보에 대한 선
택을 거의 배제하다시피한 현상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한국이
무슨 공산당 선거를 했느냐는 식의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돌아보
면 어떠한 이득을 보장한다거나 강제력을 동원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100%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는 까닭이 과연 우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어
느 누가 훈련시키거나 지도하지도 않았는데, 그토록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했는가?
그만큼 그들에게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번 선거 결과에서
보듯이 그들이 안고 있는 ‘한’과 ‘감정’의 골은 그만큼 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한’의 실체는 무엇일까? 단지 ‘지역감정’이라는 한 마디 단어로 설명될 수 있을까?
먼저 나는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의 차이를 짚어보고 싶다. 간단하게 말해 호남
사람들의 ‘지역감정’은 ‘한’에 근거한 것이고, 영남사람들의 ‘지역감정’은 ‘미움’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잘못 짚은 것일까? 돌아보면 우리는 누가 꼭 되어야 한다
고 ‘한’을 품거나, 누가 되는 것이 싫다고 ‘미움’을 품고 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감정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왔고 그렇게 행동해왔다. 놀랍고도 무서운
것은 ‘한’이나 ‘미움’은 유전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우
리나라 사람은 일본사람을 보면 이유없이 싫어하고 미워한다. ‘내’가 일본인에게 뺨
을 맞은 적도, 일본사람이 ‘나’에게 직접적인 위해나 손해를 준 것도 아닌데, ‘나’
는 일본인을 싫어한다. 이것처럼 우리는 부모들의 ‘한’과 ‘미움’을 은연중에 물려받
고 있는 것이다. 누가 왜 되어야 하는가, 누가 왜 되면 안되는가에 대해 우리가 제
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무의직적으로 물
려진 감정의 ‘유산’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우상을 굳건한 현실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그의 딸이 ‘나
는 누구가 싫어요’라는 말을 했을때, ‘왜?’ 싫은지 말해보라고 했던 것은 싫고 좋은
것이 단지 막연한 느낌에 의해서 확정되는 것을 피하라는 의미였었다. 그것은 ‘이성
에 앞선 감정’을 경계하는 태도인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보자. ‘한’을 품고 있나?
그렇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미움’을 품고 있나?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부끄러워해
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동서간의 표 차이가 ‘지역갈등’을 더욱 심화시
키는 해석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일 것이다. 이제
까지 ‘지역감정’이라는 망령을 이야기 한 사람들 가운데 누가 그 해법을 말하였는가?
누가 그 방법을 실천하려 노력했는가? 누구나 ‘지역감정’을 문제시 삼기만 했지 그
것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앞장서서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모두가 뉘우쳐야 할 점
이다. 이번 선거가 비록 동서간의 대결양상을 보였지만 이번 선거결과가 지역간의
‘한’과 ‘미움’을 해소하기 위한 발판으로 승화되기를 바란다. 헛된 감정은 그 특성
상 소모적이기에 이제는 더이상 쓸데없는 ‘한’과 ‘미움’을 버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
과 신뢰로 하나되었으면 한다. 이제 분명히 말하건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음을,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감히 나는 천명한다. 이제 더이상 대통령 선거가 ‘한
풀이’나 ‘지역이기주의의 발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쟁투’로 불리워져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10년전 정권교체의 기회에서 쓰라리게 패배한 경험이 있다
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제 대통령 선거는 끝났다. 안으로 파고드는 모든 번
민과 회한과 상처와 실망과 낙담과 슬픔과 괴로움과 절망과 미움을 거둬내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도록 하자. 우리에게는 되씹어야 할 과거보다는 계획해야 할
내일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 늘 즐거운 한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