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시를 외우는 자리에 있고 싶다. 그 시가 내게 익숙한 것이라면 다시금
같은 시상에 빠지게 되고, 그 시가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 시를 기억해
두려 애를 쓴다. 그제도 강원도 오대산에 가는 길의 차 안에서 여러 편의 시를
들었다. ‘동천’, ‘사랑’, ‘섬’, ‘섬진강’ 등의…..
그리고 까뮈의 ‘결혼’이라는 수필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봄이 한창일 5월
에 그 글을 읽어보리라.
오대산으로 가는 길에는 모든 날씨가 자리잡고 있었다. 비가 오다가 한치 앞
도 보기 힘든 안개가 끼다가 눈이 내렸다. 어둠이 내린 뒤라 길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자정이 가까울 무렵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별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짐을 내려놓으며 둘러보니 주철로 만든 벽난로가 있고, 르콜브지에식 너른 창
문이 있는 집이었다. 벽난로에는 이미 불이 붙어 있었고, 훈훈한 온기가 방
안을 돌고 있었다. 벽에는 할미꽃이나 풀초롱꽃 등의 야생초와 에델바이스를
찍어놓은 커다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너무 좋은 숙소를 잡았다고 좋아하며,
일행은 자리를 잡고 야식을 꺼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산가지 놀이와
칠교판(영어로는 tangram이라고 한다)과 UNO라는(원카드와 비슷한; UNO는 스페
인어로 하나라는 뜻) 미국식 카드 게임을 하며 밤을 새웠다.
다음날 아침, 짧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몸살 기가 느껴졌다. 어제 저녁 마
셨던 맥주 한 캔이 그동안 쌓였던 긴장을 누그러 뜨린데다, 불이 꺼진 벽난로
옆에서 잠을 잔 탓이었나보다. 바로 하루 전에도 밤을 거의 새다시피한 또 다
른 엠티를 다녀온데다, 그 때 묵었던 방도 냉방이었던 지라, 된통 몸살에 걸린
것 같았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꼼짝도 하기 싫었지만, 나만 움추려 있기 뭐해
서 조금씩 움직이기는 했지만,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이부자리를 깔고 드러 누
웠다. 한 두 시간쯤 잠을 잤나. 기획회의를 한다고 깨우길래, 억지로 일어나서
소파에 앉았지만, 눈을 뜨기 힘들었다. 그 후 출발점으로 되돌아 오는 순간까지
맥을 못추고, 뒤집힌 자라처럼, 졸린 툭눈금붕어처럼 허우적 거렸다.
어쨌든 그 다음날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을 보며, 체인이
없어 헛바퀴가 도는 차를 타고 돌아오는 것도 오랫만의 여행 기분을 살리기
에는 더 없이 좋았다. 도로사정 때문에 월정사를 들리지 못했던 것과 용인 에버
랜드에 들렀다가 입장료가 모자라 들어가지 못한 것도 이번 여행의 뿌듯함을 결
코 상쇄할 수는 없었다. 만약 몸살에 걸린 채 눈썰매를 탔다면, 지금 이 글을 쓰
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너무 재밌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녀온 너무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 늘 즐거운 한빛.
나 저 멀리 알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여행을 간다
길이 있는 한, 여행은 언제라도 시작될 수 있는 것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다, 걷고 싶다, 듣고 싶다, 만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