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목요일 친구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지난 3월부터 병석에 누워계시다
떠나신 것이다. 친구는 병구완을 위해 집에 내려가 있었고, 나는 두 주, 또는
세 주에 한 번씩 친구를 볼 수 있었다. 친구는 나날이 야위여 가는 할머니를
부축하여, 대소변을 받아내고, 죽을 드시게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닌 병구완을
묵묵히 친구는 해나갔다. 나는 그가 참으로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
다. 친구가 간혹 힘들어 할 때에는 할머니가 계실 때 잘 해드리라는 말을 하
곤 했다. 사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몇마디 위로의 말 밖
에는…..
그제 친구와 통화를 하며 친구가 하는 말이 “내가 할머니에게 잘해드리지 못
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원래 사별 후에는 그 사람에게 잘한 것보다
는 못했던 것이 더 마음에 남는 법이다.
나에게도 할머니가 계시다. 정정하신 모습이지만, 집에 내려가 뵐 때마다 늙
어 가시는 모습이 안타깝다. 할머니는 어머니보다 앞서 내게 사랑이 무엇인
지를 알려주셨던 분이다. 내가 어려서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대학을 졸업
할 때까지 할머니는 항상 나를 위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셨다. 할머니는 또
한 매일같이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이따금씩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보면 기도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시금 편안한 잠에 빠져들곤 했다.
할머니는 지금도 내가 껴안고 볼에 뽀뽀를 해드리며,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하면 수줍어 하신다.
가족관계는 친밀함과 깊은 애정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죽음
이라는 한계상황 앞에서, 서로와의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한 후에야 그 소중
함을 비로소 깨닫곤 한다. 가족에게 잘해주자. 곁에 있을 때…..
– 늘 즐거운 한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