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잠을 이루려 애써보지만 잠을 이루기 힘듭니다. 지난 금요일 당
신과 함께 본 영화를 생각해 봅니다. 당신은 그 영화 가운데 등장하는 주
지사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선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
음을 말해주었습니다. 또한 당신은 어떤 한 개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선한 것으로 연결되지만은 않음을 역사를 통해 많이 볼 수 있다는 말도
함께 해주었습니다. 오늘 교회에서 문득 당신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한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에는 사울
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알다시피 유대인 중의 유대인으로 당시 가
장 뛰어난 스승 밑에서 공부를 했고, 가장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눈에는 기존 유대교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세력이었던 기독교도들은 ‘박멸’의 대상으로 비쳤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예
루살렘에서의 박해에 만족하지 않고 다메섹으로 가서 기독교도를 잡아들이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그가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다가갔을때 그는 갑작스런
빛에 둘러싸입니다. 그가 두려움에 땅에 엎드려 있는데 소리가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는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때부터 사울은 청맹과니가
되어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리어 다메섹 성읍으로 들어갑니다. 사울은 이때부터
3일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사울은 이 3일 동안의 기간 사이에
완전한 인격적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그가 올바로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대상을 실제로는 전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을 간단히 ‘충격과 회심’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이 3일 동안
그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습니다. 그는 깊은 침묵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하나님을 다시 발견하고, 그가 핍박하던 예수를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토록 당당하고 살기 등등하던 사울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답
을 당신의 말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사울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
하는 것이 곧 그가 섬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 것
이었지만, 결국 그 생각은 한 인간의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
도 하나님의 뜻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가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을 거스
르는 일임을 핍박의 대상인 예수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입
니다. 우리는 오해의 시작이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사울은 예수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사울은 3일이 지난 후 아나니아라는 사람에게 안수를 받고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그가 이후에 보인 모습을 보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는 완전히 180도
로 변하여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다 놀라서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
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 변화는 실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쓰러진 이후에 그의
이름은 ‘지극히 큰 자’라는 뜻의 ‘사울’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는 뜻인 ‘바울’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 그가 만난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고전 15:10)
사람에게는 많은 변화의 기회와 변화의 순간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 기회를
잘 포착하여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경
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아가 완고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자아를 스
스로 변화시키기란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내가 아닌 하나님입니다. 나는 당신이 이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늘 건강하세요.
– 늘 즐거운 한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