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아내와 함께 종로에 있는 극장에 가서 ‘박하사탕’을 보았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과장이나 가감 없이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감독의 시선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한 시선은 시간을 거
슬러 때로는 잔인하리만큼 집요했고,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으
며, 때로는 잔잔한 물 위로 떠내려 가는 낙엽처럼 쓸쓸했다.
주인공 김영호는 영화의 처음이자 주인공의 마지막 순간에서 “나 다
시 돌아갈래”라고 외친다. 그가 그렇게 외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어디로,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일까?
그의 마지막 소원이랄 수도 있는 외침을 따라 카메라는 시간을 거슬
러 올라간다. 떨어진 꽃잎이 나무에 달라붙고, 강아지가 뒷걸음치고
차들이 뒤로 달려가고, 아이들이 뒤로 뛰어다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영호가 다리를 저는 것도, 사진기에 얽힌
사연도, 그의 아내 홍자의 기도도 저절로 설명이 된다.
영화를 보며 가슴 아팠던 것은, 김영호는 가해자였지만 그가 가해자
였기 때문에 겪게 될 상실과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사실
이었다. 그의 영혼은 알게 모르게 점차 깨어져 갔고, 악에 길들여져
갔던 것이다.
마지막 단원인 ‘소풍’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그것은
‘면회’에서 깨어져 가는 한 영혼을 보면서 흘렸던 눈물의 연장이었다.
흐려진 시선 속에 들려왔던 순임과 영호의 대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영호씨 왜그래요?”
“이 곳이 낯설지 않아요. 이 장소에 언젠가 와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데요. 언젠가 한번 와본 곳이라고 느
끼는 때가 말이에요…… 근데 그건 꿈에서 본 곳이래요.”
“그래요?”
“난 영호씨가 꾼 꿈이 좋은 것이기를 바래요.”
엔드크레딧이 지나가고 막이 내릴 때까지 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
느라 애를 먹었다.
고백하건데 나 또한 주인공 김영호처럼 첫사랑에게 괴로운 거절을 했
던 적이 있다. 그녀의 태도로 보아 짝사랑을 하는 내 쪽에서 그만 두
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락을 끊었고, 그 후 연결된 통화에서 한
번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너무 멀어서 가기 어렵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전철로 겨우 한 시간이 안 되는 거리에 있던 그녀에게 말
이다. 몇달 전 나는 우연찮게 그녀의 홈페이지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녀가 일년 전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10월말, 내
가 결혼한다는 사실을 그녀의 부모님에게 알리기 위해 그녀의 고향집에
전화를 했을 때 전화를 받은 것은 놀랍게도 그녀였다. 그녀는 남편과
헤어졌고 집에 잠시 내려와 있다는 말을 했다.
그녀를 내 결혼 일주일 전에 만났을 때 그녀는 왜 자기를 피하려 했었
는지를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미안해, 너를 잊기 위해서였
어.”라고.
결혼 일주일 전의 그 만남에서 나는 그녀로부터 우리가 결혼할 수 없었
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녀도 나를 좋아
했지만, 좋아해서는 안될 상황이었다. 내 주위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을 나만 몰랐던 것이었고 아무도 내게 그 이유를 이야기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와서 어떻게 돌이킬 수도 없는 사실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결혼 일주일 전 나는 그로 인해 무척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현실을 그
대로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생은 너무 드라마틱하다.
이제 그녀가 진실로 행복하기를…..
– 늘 즐거운 한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