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그림 – 이중섭 특별전을 보고

오늘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 이중섭 특별전을 보기 위해 사간동 갤러리
현대를 찾았다. 친구와 만나 함께 도착한 갤러리 현대 앞에는 200미터가
량의 줄이 늘어서 있었고,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신문에서 읽기만 했던 그 인파가 여전히 평일인 오늘에도 늘어서 있음에
조금은 놀라움을 느끼며, 3층부터 본 전시가 이루어지는 2층, 1층을 거
쳐 지하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이중섭, 그 분이 그린 50여점의 그림들 앞에서 나는 연신 탄복과 감탄과
찬사를 늘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예전에 피카소 전시회를 볼 때 처럼,
그 색과 선에 매료되었던 것처럼 이 분이 그린 그림에서도 거의 반세기
전에 이미 터득한 그림의 경지가 탁월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간
결한 선 속에서도 인물과 동물들이 마치 살아서 꿈틀대는 듯한 역동성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묻어나오는 것이 느껴졌
다. 항상 이러한 전시회를 통해 느끼는 점이지만, 사진으로서는 결코 나
타낼 수 없고, 담아낼 수 없는 터치와 질감, 색채를 원화는 가지고 있다
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미술품은 직접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생각컨대 이중섭 만큼 소의 깊은 눈망울을 그려낸 작가는
다시 없을 것이다.

일제시대와 해방과 6.25라는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 일본인이었던 아내와
의 생이별을 겪었던 그 분의 인생역정을 볼 때, 비슷한 시기의 김환기,
그 이후의 장욱진 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일본인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일본으로 송환되어 떨어져 있는 아내와 자
식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나타나는 절절한 문장과 그림들은 그가 얼마만
큼 아내와 자식을 사랑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그 애정이 담긴 그림
속에서 특히 ‘최애의 처'(최고로 사랑하는 아내)라는 호칭이 내게는 인상
깊었다.

화구를 마련할 형편이 아닌 피난처에서 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동화(어린이
그림)속에서 그림의 주인공들은 이상향인 도원과 낙원에서 물고기, 새와
더불어 뛰놀고 있었지만, 그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듯 하다.

그 분의 친구였던 시인 구상이 ‘그림 한 점 한 점에 얽힌 사연이 기막힌
것들이었다’고 한 말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애
썼던 그와 그의 불타는 예술혼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 짐작해 알 듯 하였다.

그 분의 연보와 연대기를 읽으며, 목울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과연
예술가는 가난과 질병을 등에 업고 살아가는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어떤 이는 그를 고흐에 비교하기도 하였다. 하옇든 그 분은 갔고, 우리는
다만 그 분의 남겨진 유물을 추스리며 감상을 나눌 뿐이다.

이번 전시회에 대한 감흥을 이야기 하자면 이 외에도 여러가지라 아마 밤
을 새워야 할 것이다. 나는 이래서 전시장을 찾는다. 전시장은 일상에서
얻지 못하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생각을 하게 하는 공간이기에……
여기서 느끼는 맛과 자극은 아주 특이하고 독특하여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번에 전시된 그림들을 보며, 소에서 소년으로 그리고 가족으로 확대되
어지는 주제들 속에 드러나는 넘치는 생명력과 밝음, 그리고 유쾌함을 진
솔하게 느끼며, 거의 모든 연령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 전시회를 보다
일찍 알지 못했던 것에 일말의 아쉬움을 느꼈다.

– 늘 즐거운 한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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