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에서 바라보자 동산 뒤편으로는 끝 모를 넓은 평야가 보였고 동산 왼편
으로는 바위에서 솟아난 샘물이 개울을 이루어 멀리 바다까지 이어져 있는 것
이 보였습니다. 동산의 오른편을 바라보았는데, 뭔가 커다란 기둥이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라오는 그 기둥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졌습니다. 라오는
동산을 달려 내려가 그 기둥 앞에 이르렀습니다. 기둥은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그 기둥은 온통 수정처럼 투명한 돌로 만들어졌는데, 어른
열명 정도가 팔을 맞잡고 설 정도의 넓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라오는 기둥을
손으로 만져보며 내심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줄기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왔는데, 아련한 꽃향기가 바람을 따라
오는 것이었습니다. 라오는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깜짝놀라 “앗!”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언제 왔는지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여자애가
자기 옆에 서서 빙긋이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놀랬니?”
“어어, 넌 누구니?”
“난 꿈의 통로를 안내하는 안내자야.”
“안내자?”
“응, 그래. 난 안내자야. 그런데, 넌 여기가 처음이니?”
“응, 처음이야.”
“어쩐지 못 본 얼굴이라 생각했어.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모두 여기에 한
번쯤 들르거든. 이 기둥 사이로 난 길은 다른 꿈으로 통하는 통로인데,
여기를 통하면 다른 꿈의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어.”
“이 기둥 사이가 다른 꿈으로 이어지는 통로라고? 그저 기둥일 뿐인데?”
“그래, 보기에는 그저 기둥이지만 이 기둥을 지나칠때 너는 다른 꿈의 차
원으로 이동하게 돼.”
“그런데, 여기는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없니?”
“음,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기에는 나 말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 그들은
꽤 오랜 시간동안 이곳에 머물기도 했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어.
“오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고?”
“그래,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꿈을 꾸는 사람들이야. 꿈을 꾸면
서 이곳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거야. 아무리 먼 나라에 사는 사람들일지
라도 이곳에서는 바로 눈앞에서 만나게 되는거지.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꿈을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지. 그런데 문제는 꿈을 잃어갈
뿐만 아니라 꿈꾸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거야.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음…. 지금은 낮시간이기 때문에 사람을 보기
힘들지만 밤에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편이야.”
라오는 눈앞에서 쉴새없이 말하는 눈이 동그랗고 입매가 도톰한 소녀를 보
며 속으로 ‘참 이쁘게 생겼는데, 말은 왜 저리 많이하지?’하는 생각을 했습
니다. 그러자 소녀는 대뜸,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말이 많다고?”라고 되
물었습니다. 라오는 당황하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아니야. 그런데 어떻게….”
“푸후후, 어떻게 네 생각을 아느냐고? 후훗, 네 머리 위를 한번 봐봐.”
소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라오의 머리 윗 쪽을 가리켰습니다.
라오는 소녀가 말한대로 자기 머리 위에 뭐가 있는지 쳐다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잘 안보였는데, 라오의 머리 위에는 호박만한 크기의 얇고 투명하
고 동그란 공기방울이 풍선처럼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
고 신기한 것은 그 표면에 ‘참 이쁘게 생겼는데, 말은 왜 저리 많이하지?’라는
파란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라오는 그것을 보고 귀밑이 빨개지며,
“이..이건… 뭐야?”라고 풀죽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큭큭큭, 그건 ‘말풍선’이라는 건데 네가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할 때 그
내용이 나타나는거야.”
“그러면, 왜 말풍선이 네 머리 위에는 안 나타나는 거야?”
“음, 나는 말이지, 아~아주 특수한 기술이 있기 때문에 말풍선이 안나타
나는 거야.”
소녀는 턱을 들어올리며 짐짓 무게를 잡으며 말했습니다.
“그 기술이 뭔지 말해줄 수 있니?”
“하하, 내가 그 기술을 터득하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데, 너에게
쉽게 알려주겠니?”
그리곤, 소녀는 웃음을 참느라 쿡쿡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치사하긴…. 앗!’
라오는 깜짝 놀라며 말풍선에 나타날 글씨를 가리기 위해 손을 위로 쭉 뻗
었습니다. 아, 그런데 너무 쉽게 말풍선이 손에 잡히는게 아니겠습니까?
말 풍선은 보기와는 달리 말랑말랑한게 마치 진짜 풍선 같았습니다. 말
풍선을 가슴에 품고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라오를 보며 소녀는 피식 웃
으며 자기 등 뒤에서 라오의 것과 같이 생긴 말풍선을 꺼냈습니다.
“아이, 좀 더 놀려주려 했는데, 너무 시시하게 됐네~”
소녀는 말풍선을 마치 농구공처럼 땅바닥에 드리블하며 입맛을 다셨습니다.
몇번 더 말풍선을 튀기다가 소녀는 말풍선을 잡더니 손을 똑바로 펴 앞으
로 내밀더니 말풍선에서 손을 떼었습니다. 그러자 땅으로 떨어질 줄 알았던
말풍선은 공중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었습니다.
“봐, 그대로지? 이건 원하는 곳 어디에든 놓아둘 수 있어. 보통때는 머리
위에 둥둥 뜬 상태로 따라다니지만 따로 떼어 놓을 수도 있거든.”
라오도 말풍선을 땅에 한번 튀겨보다가 무릎 사이에 끼우기도 하고, 머리 위
에서 돌리기도 하고 등 뒤에 감추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소녀
는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말풍선은 마음의 거울
거기엔 모든 것이 드러난다네
선한 마음, 악한 마음
추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
모두가 나타나니 감출 수 없네
아무도 감출 수 없고
숨길 수 없는
맑고도 투명한 마음의 거울
사시사철, 언제나 변함없이
진실의 실과를 맺곤 한다네
라오는 노래를 부르는 소녀를 보며 중요한 것 한가지를 잊고 있었다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바로 소녀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여태껏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라오는 아직도 자기 노래에 취해 있는 소녀에게 물었
습니다.
“중요한 걸 잊었는데, 네 이름이 뭐니?”
“아, 내 이름, 내 이름 말이지? 후훗 내 이름은…..라오야! 라오야!”
“뭐라고?”
그때였습니다. 누군가가 라오의 몸을 부드럽게 흔들며 말했습니다.
“라오야! 라오야! 일어나서 밥먹으렴, 웬 잠을 이리 곤하게 자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