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감 - 미래의 과거개입 그 순환적 연결고리의 시작은?>
시사회를 신청한 뒤 운좋게 선정되서 아내와 함께 중앙시네마에서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잘 짜여진 구도를 가졌다.
흔히 말하는 ‘호흡이 고른 영화’이다. 약간은 동화같은, 그러면서도 생각
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만약,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할 점이 있다면 한
가지 말해 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미래의 과거개입’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몇가지 사항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지인의 무선기는 어떤 경로로 지인에게 전해졌는지는 설명이 생략되어 있
으나 소은의 것이다. 이 끊어진 고리는 아주 드라마틱하게 연결될 수 있
다. 먼저 소은에 의해 무선기가 전해진 경우, 두번째로 햄 동아리를 통해
무선기가 전해진 경우와 그 이외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우연한 계기로 20년 후의 무선기는 20년 전의
자신에게 콘택한다.
– 지인은 이를 통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소은의 일상에 개입하며, 소은은
지인을 통해 미래의 사실을 알게 되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결정하고 만다. 이 부분이 가슴 아프다. 소은이 미래를 알
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그녀의 짝사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까. 미
래는 과연 확정된 것일까. 만일 나도 확정된 미래의 사실을 지금 알게 된
다면 나 또한 소은처럼 모종의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할 것이며, 미래를 안
다는 것이 사람의 행동반경을 그만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사실 지인과 소은이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처지였기에 과거에 대한 미
래의 개입은 그만큼 파괴력이 강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의도했던 것
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인 호기심’은 소은의 인생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 사실 나의 입장은 소은에게 무척 동정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미래를 바
꿀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은 점. 그녀가 연기설에 경도된 탓일까? 어
쨌든 짝사랑은 가슴 아프다. 하는 사람에게도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관객에
게도…..
– 이 영화에서는 영화 ‘백투더 퓨처’나 SF소설 중 ‘타임머신’에 관련된 논쟁
과 비슷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가령,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이 타임머신
에 올라타서 과거로 갔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과 사소한 시비끝에 그 사람
을 죽이고 말았다. 그런데 그는 알고 보니 자신의 할아버지였고 아버지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이었다면 그 사람이 다시 현재에 돌아오면 그 사람은 존
재할까? 존재하지 못할까?라는 식의 논쟁 말이다. 지인의 고민 또한 당연히
이런 존재론(?)적인 고민일 수 밖에 없다.
– 미래의 과거 개입에 대해서 과거 또한 미래에게 개입하며, 순환적 연결고
리를 형성하게 된다. 소은의 무선기가 지인에게 건네지지 않았다면, 지인은
소은과 컨택할 수 없었을 것이고, 소은은 과거의 개입을 받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선기는 지인에게 건네졌고 순환적 연결고리는 끊기지 않
은 것이다. 만약 무선기가 소은의 의지에 의해 지인에게 전해진 것이라면
이미 진행된 상황을 돌이키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소은을 이끌었을지도 모른
다. 무선기가 소은의 의지에 의해 전해진 것이 아니라 해도 순환적 연결
고리에는 이상이 없다.
다른 이야기를 몇가지 하자면…..
– 소은은 입학하는 지인을 직접 마주하지 않고, 피했다. 그것은 아마 과거의
아픈 기억을 회상하게 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을 꺼려한 것이라 생각되며,
소은의 성격상 조용히 피하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 이해된다.
–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두 사람의 조우…..
G선상의 아리아가 이처럼 애닯게 느껴진 적도 드물다.
– 소은의 향기론은 다시 음미할만 하다(참고:고후2:14-16).
– 수위 아저씨는 마치 현자와 같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그거 쉽게 없어지진 않을 거야…..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지.”
동감은 익숙한 이야기를 식상하지 않게 하는 연출력과 모나지 않은 배우들의
호흡과 연기력이 뒷받침된 수작이다.
가끔씩 이런 영화로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싶다. 비록 여름이긴 해도…. 🙂
– 늘 즐거운 한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