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고요함을 돌려줘!!!

나는 정적과 고요를 좋아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무미건조한 정적과 고요보다는 이따금씩 나는 작은 소리와
더불어 이루어진 정적과 고요를 좋아한다. 그것은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듣게 되는
소리가 아닌, 산을 오르다 중간에 잠시 멈춰 쉴 때 들리는 소리들로, 가만히 있으
면 이따금씩 들리는 산새들의 지저귐과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들이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이따금씩 어떤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릴적 나는 함박눈 오는 저녁, 마당에 나가 운동화를 신고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재밌어 했다. 발걸음을 움직이며 다음에도 같은 소리가 날지
궁금해 했었다. 비가 올때면 우산을 쓰고 쭈그려 앉아 우산에 빗물이 떨어지는 소
리를 들으며, 발밑을 흘러가는 물이 그려내는 무늬를 바라보곤 했다. 내 몸집보다
커다란 우산 속에 있으면 그것이 하나의 세계이자 우주였다. 아마 그 무렵부터 비
내리는 소리를 좋아한 것 같다. 비 오는 저녁, 지붕에 물듣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
때에는 행복한 느낌이 나를 감쌌다. 평상에 앉아 화단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그 소
리가 공연이 끝난 후 울리는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같다고 느끼기도 했다.
비가 올 때 부는 바람에 따라 박수소리는 멀어졌다 다시금 가까워지곤 했다. 더운
여름철 쏟아지는 소나기가 몰려간 뒤 땅의 열기는 한층 옅어졌고, 하늘에는 옅은
구름들과 그 사이로 뻗어올라간 무지개가 떠 있었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지금 이 세계에는 정적과 고요보다는 소음이 난무한다.
오늘 아침 전철을 타고 오면서 나는 또 하나의 소음에 괴로움을 당했다.
전철칸 벽에 붙어 있는 LCD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잡다한 영화광고 속 효과음은 전
철의 덜커덩거림과 안내방송, 사람들의 대화보다 큼지막한 소음으로 밀려왔고, 듣
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 밖에 없는 괴로움을 선사했다. 전철이 남태령에서 선바위
역을 향할 때 전원변환이 이루어졌고 문득 모든 LCD가 꺼졌다. 잠시동안의 정?이
이어졌지만, 이내 똑똑한 컴퓨터는 다시금 광고 방송을 쉴새없이 내보냈다.
이런식으로 서울의 모든 지하철에 LCD TV가 설치된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언젠가 신문기사에 외국의 어느 거리에는 차량의 소음을 샘플링 처리하
여 분수소리로 바꿔서 들리도록 하는 장치를 설치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시민
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본주의의 횡포가 더욱 우세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

– 오늘은 그리 즐겁지 못한 한빛.

PS. 글을 써놓고 보니 마치 신문에 나오는 ‘시민의 소리’컬럼에 등장하는 글처럼
되버렸군…. 쯔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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