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 시작은 늘 그렇듯이 뭔가 하나의 실타래에서 비롯되었다.
몇주전 개기일식을 보면서 문득 하늘을 제대로 보고 싶었고, 집에 있는 아버지께 물려받은 Tasco 8×35 쌍안경을 가지고 달을 보다가 천체관측의 세계로 발을 내딛었다는 것이다.
천체관측을 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요구조건이 있는데, 첫째, 그럭저럭 괜찮은 망원경이 필요하고, 둘째, 망원경의 무게 때문에 이동시 차가 있어야 한다는 점과 셋째, 왠만한 별을 보기 위해서는 광해가 많은 도시를 떠나서 시골이나 산꼭대기를 향해 가야 한다는 점이다.
요구조건을 검토해보면서 첫째, 망원경은 클수록 좋지만, 일단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별은 망원경으로 본다고 더 잘보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16인치 망원경으로 본다고 해도 별 자체는 하나의 점으로 보일 뿐이다. 그만큼 별과 지구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deep sky를 볼 경우에는 말이 달라진다. 성단과 은하를 관측하는 이러한 경우 대구경 망원경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둘째, 차를 사는 것은 뚜벅이를 고집해온 나에게는 앞으로도 미정사항이고,
(하지만 지난번 ‘괴혼’을 하기 위해 PS2를 구입했던 전철을 밟을 거라는 불안감이 드는 건 왜일까? 천체망원경때문에 차를 사게 되는 날이 올지도…..)
셋째, 매번 도시를 떠나는 것은 힘들것 같으니 망원경을 아파트 옥상에 설치하는 것도 생각해보고 있다(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겠지만, 자칫 남의 집이나 쳐다보는 변태로 오인받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이 있다).
어찌됐건 망원경을 자주 사용하기 위해서는 가볍고 이동성이 높은 놈이 필요했다.
나는 국내 천체망원경 가격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이런 가격이면 이베이를 통해 구입하는 것이 더 쌀 것이라 생각했고, 수면시간을 줄이면서 이베이를 통해 무려 4대의 천체망원경을 주문하고 말았다(어쩌다 bidding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고 말았다. 써보고 괜찮은 것 한 대만 남기고 온라인 장터에 팔아치우면 되겠지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물론 그 사이사이 ‘관측천문학’, ‘관측천문학실습’, ‘오리온 자리에서 왼쪽으로’ 등의 책을 읽으며, 반사식, 굴절식, 돕소니안, 막스토프, 슈미트 카세그레인 등의 용어에 익숙해졌으며, 가대의 종류에 경위도식과 적도의식이 있으며, 왜 망원경에 냉각팬이 달려있어야 하는지도 , 달을 보면 왜 울렁거리는지도 알게 되었다. 별은 반짝거리지만, 행성은 반짝거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북반구에서는 마젤란 성운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육안으로 하늘을 보면서 저건 알타이르야, 음 이건 베텔기우스군 하는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찰스 메시에가 메시에 목록을 만든 이유는 혜성연구에 걸리적거리는 은하나 성운을 혜성과 헷갈리지 않기 위해 목록으로 만들었다는 부차적인 정보도 더불어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모르던 사실을 하나하나 알아나가는 것이 솔솔한 재미를 준다.
문득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취미생활로 천체관측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늙어서도 겨울철 추위와 맞서 싸울 정도의 체력은 필수다).
아내는 내가 요즘 하늘에 미쳤다고 한다. (물론 아직까지 아내에게 천체망원경을 4개나 주문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시간이 많으면 그때 망원경을 사도 늦지 않느냐며 옆에서 핀잔을 준다.
그 말이 맞긴 맞다. 그때는 지금보다 돈은 더 많을지 모른다(정상적인 경우라면 말이다.) 그때가면 더 좋은 성능의 망원경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별보는 즐거움이 저축되는 것이 아닌 이상 지금 그 즐거움을 미리 맛보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해본다(저질러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
요즘 나는 반짝이는 별을 보는 것이 기쁘다. 어릴 때 한번 천체망원경을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했다가 생각보다 값이 엄청나게 비싼 것을 알고 스스로 포기했던 기억때문일까. 이번에 망원경이 도착하면 애들과 함께 달부터 보리라. 달의 바다와 산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해야 하리라.
오늘 저녁은 하늘이 맑기를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