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4일 오후 8시 50분경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셨다.
13일이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연달아 출장이 잡혀있는 터라 주말에 결혼기념을 하자고 했고
다음날 새벽기도 때문에 11시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14일 새벽 2시경 전화벨이 울렸다.
가끔씩 잘못 걸려오거나 술에 취한 사람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기에 장난전화려니 하고 받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큰 누나였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니 빨리 내려오라는 전화였다. 한편으로 당황스럽고 떨렸지만, 마음을 침착하게 먹고
아내와 아이들을 깨워서 차에 태웠다. 전주까지 내려가는 길은 어둡고 고요했다. 엑셀을 계속해서 힘껏 밟았다.
가는 도중 병원에 전화를 해서 상태를 물어보니 의식이 없으시다는 말을 들었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어머니와 고모 그리고 큰 누나가 와 있었다.
아버지는 산소튜브를 꽂고 힘겹게 숨을 쉬고 계셨다.
의사의 말을 들어보니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앰블란스 안에서 한번 심장이 멈췄다고 했다.
앰블런스 요원은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고 그저 빨리 달리라고만 했다고 한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대기하던 모든 스탭들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로 심장은 살려냈지만, 정상기능의 1/10 정도밖에 기능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계속되는 코마상태에서 기계에 의존해서 숨을 힘겹계 쉬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왔다. 뭐라고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겨우 울음을 참고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 희용이 왔어요. 일어나셔야지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형과 작은 누나 그리고 매형이 도착하고 교대로 병석을 지켰다.
조금 쉬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차에 가보니 오른쪽 뒷바퀴에 펑크가 나있어 주저앉아 있었다. 달리는 동안 바람이 서서히 빠졌던 것 같다. 워낙 고속으로 달려왔던 터라 위험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감정의 마비상태인지 별 느낌이 없었다. 아버지는 혼수상태인데, 나는 보험사를 불러 타이어를 때우는 등 일상적인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호흡은 조금 고르게 변했지만, 심장이 정상기능을 하지 못하기에 혈액투석도 기대할 수 없었다. 심장박동을 나타내는 그래프는 점점 지쳐가는 심장상태를 표시했다.
동공반사조차 없는 상태였지만, 심장이 회복될 것을 기대하며,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르는 기적을 구했지만 결국 저녁 8시 45분쯤 다시 한번 심장이 멈췄고, 별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이 이어졌고, 10분쯤 후 의사의 사망통보를 들었다.
건강하셨던터라 갑작스런 죽음 앞에 한편 당황스러웠고, 유언도 못 남기시고 돌아가셨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돌아가실 때는 편안하게 가셨다. 마치 주무시는 것 처럼…..
아버지의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고 장례식장을 예약하고, 문상객을 맞을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연락은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수첩을 통해 연락을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문상객을 맞으며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말하면서 차즘 마음을 추스려나갔지만
첫날은 감정의 진폭이 아주 커서, 괜찮다가도 어떤 위로의 말을 듣거나 하면 갑자기 울컥하는 것을 자제하느라 힘이 들었다.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입관 그리고 발인과 전주시 승화원에서의 화장을 거쳐 유골을 나무함에 넣은 뒤 보자기에 담아 선산에 매장하기까지 아버지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다.
흙을 뿌릴 때 목사님께서 고인에게 남기는 말을 하라고 해서 “아버지, 좋은 신앙의 본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데
눈물은 왜 그리 나는지…..
초상을 치루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얼마전까지도 깨알같이 쓰신 영문 노트를 발견했다.
성경말씀을 적으시고 그에 대한 해석을 적은 노트였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한동안 사람의 생이란 것이 참으로 부질없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