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나는 친구와 함께 음침한 비디오방에 찾아가서 화니핑크를 보았다. 본 소감
은 참 재미있는 영화였다는 것이다. 30살이 되기 전의 여성이라면 한번쯤 보기를 권
하고 싶을 정도였다. 왜 여자, 아니 한 인간은 다른 누구와의 만남을 고대할까? 개
인적인 외로움 때문에? 자신을 보다 향상시킬 촉매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에?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각각 이유는 여러가지일 터이지만 한 인간이 자신을 알아 줄 다
른 이와 만나고 싶어하는 욕구는 교육이나 문화적 관습에 의한 것이기 이전에 인간
내면에서부터 우러나는 욕망인 듯 하다. 주인공 화니핑크는 노처녀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사실 여자나이 서른살에 자기가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
쨌든 화니핑크는 자기와 사소한 이야기와 관심을 주고받을 ‘상대’를 원하고 있다.
모든 이야기는 언제나 이렇게 시작된다. 뭔가가 채워져 있지 않아 그것을 추구한다
거나, 꿈을 가지고 있다거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화니핑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화니핑크를 중심으로 소설을 쓰는
어머니, 유령을 무서워하는 건물관리인, 자신이 다른 별에서 왔다고 믿는 점성술사,
직장인 항공사에 근무하며 늘 화니핑크를 놀리는 남자동료, 그리고 딸 하나를 데리
고 사는 화니핑크의 친구, 그리고 재개발이 진행중인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 죽음을
알고자 하는 모임의 멤버들이다. 이들은 화니핑크의 주변에서 그를 격려하기도 하고
자극하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한다. 이 역시 다양
성을 지닌 하나의 작은 사회인 것이다.
아무리 파트너를 원해도 구할 수 없는 화니핑크는 점성술사의 등장으로 하나의 전
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의 충고로 인해 아파트관리인이 마지막 연인이라 생각하고
그를 사귈 계획을 과감하게 결행한다. 어쨋든 계획은 그런대로 성공해서 화니핑크는
아파트 관리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보통 한 남녀가 서로 만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둘 사이의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심사가 서로 비슷하
다고 여겨질때 야릇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 저 사람은 나와 비슷하구나, 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 하는…. 화니핑크에서는 이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계속되는 화니핑크의 파트너를 구하기 위한 노력은 절박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결코
그것이 추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실패를 거듭하며, 화니핑크는 점성술사의 충고에
점점 더 의존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점성술사와 화니핑크의 우정이 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게
이인 점성술사와 화니핑크의 관계는 남녀간에 친구관계가 가능한지에 대한 진부한
논의를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린다. 병들고 배고프고 가난한 점성술사는 게이바에 출
입하며, 립싱크를 하다 사귄 티브이 앵커와 사랑을 하지만 실연을 당한다. 이들은
서로 실연의 상처와 위로와 희망을 주고받으며, 살아나간다. 점성술사는 화니핑크에
게 자유와 적극성을 부여하는 존재이며, 우연찮게도 그는 흑인이다. 아. 이제 그의
이름이 생각난다. 오르페오, 죽음의 신. 오르페오! 죽음은 항상 화니핑크의 곁에 있
었던 것이다.
화니핑크는 현재의 삶이 덧없기 때문에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죽음을 체험하는 모임
에 주기적으로 참석하곤 한다. 고통이 적게 죽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관에 들어가
땅에 묻혀보기도 하고, ‘눈있는 동물을 먹기 거부한 자’라는 묘비를 새기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는, 삶이 의미를 가지게 됨으로서 죽음을 버리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친구는 ‘되게 재밌다’라는 말로 감상을 표했다. 아마 내가 지금까지
보자고 한 영화 중에 가장 나았다는 말일 것이다.
– 늘 즐거운 한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