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6시 반, 자동응답기가 켜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는데,
다급한 목소리 “큰일났어요. 어쩌고 저쩌구…. 웅성웅성…. 딸깍.”
이거 웬 일이야? 목소리를 들어보니 뭔가 큰일이 난것 같다. 전화가 도
중에 끊어져서 다시 전화를 해보았지만 계속 통화중이다. 어제 저녁 천
장에서 물이 떨어진다는 전화를 받기는 했다. 아마 물난리가 나지 않았
을까? 샌달과 가방을 둘러매고 택시를 탔다. 쏟아지는 빗물은 물줄기 같
았다. “석계역이요.” 동네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물을 퍼내고 있었다.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이정도라면, 반지하인 내 친구의 방은
아마….’ 나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친구가 사는 집에 다다르니, 나를
깨운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고 주인아주머니와 옆방 아주머
니, 아저씨 등등이 열심히 바가지로 물을 퍼내고 있었다. 구청에 전화를
해보라고 했더니, 소용 없다고, 통화중이라고, 여기만 이런게 아니란다.
하여간 나도 함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물을 퍼내다가 친구가 어디있는
지 살펴보려고 안에 들어가보았더니 전원차단기가 내려져있는지 어두컴컴
했다. 욕실을 보니 흰색 잠옷을 입고, 화장실에 벽을 붙잡고 서 있는 친
구를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뭐해? 옷이라도 갈아 입어.” “아저씨가
여기를 밟고 있으라고 그래서…” 욕실 발목까지 차오른 물속으로 손을 내
려 만져보니까, 물이 하수구에서 역류하고 있었다. 친구는 욕실 하수구를
수건으로 덮고 그것을 발로 밟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네덜란드의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손으로 막았다는 소년이 생각나는군) “아이고, 이래서야 돼
니?” 다시 손으로 더듬거리면서 살펴보니, 수채구멍을 막고 있는 프라스틱
으로된 거름채가 만져졌다. ‘이것을 벗겨내고 구멍을 막아야겠군’ 나는
첨벙거리며 싱크대 옆으로 가서 젓가락을 꺼냈다. 젓가락으로 프라스틱
거름채를 집어내고 걸레에 비닐랩을 씌워서 구멍을 일단 막았다. 집이
반지하라서 이미 무릎까지 물이 오르고 있었다.(욕실은 방보다 약간 높다)
물을 계속 퍼내고 있었지만 물이 차오르는 속도로 봐서 물은 퍼내서 될 일
이 아니었다. 이젠 바깥 도로에서도 물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래선 안돼겠
다고, 가재도구를 먼저 꺼내서 3층으로 올리자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듣
고 일단 컴퓨터, 오디오, 프린터등을 3층으로 날랐다. 이어서 계속 책,
옷가지 등을 날랐지만, 아랫쪽에 있는 물건들은 이미 다 물에 잠기고 말
았다. 물은 무섭게 불어나고 있었다. ‘이러다 집까지 잠기는 거 아닐까?’
일단 3층에 올라가서 TV나 라디오를 켜보자고 했다. 뭐 강화에 600밀리가
넘는 폭우가 내렸다고? 의정부도 물난리를 겪나 보다. 이 집이 있는 곳
에서 조금 떨어진 중랑천도 넘칠듯이 홍수 위험수위를 10센치 남겨두고
철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동부간선도로는 완전히 통행이 차단되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런 이제까지 남의 이야기로만 알았던 재해를
이렇게 만나다니….’ 아래로 내려가 봤더니 냉장고가 둥둥 떠다니고 있
었다. 냉장고를 미처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지금은 물을 퍼내도 소용 없어. 조금 있다가 물이 좀 빠지기 시
작하면 합시다.”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모두 체념한 듯 물퍼내기를 중단
했다. 그래도 몇가지 물건은 건져냈고, 나머지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했
다. 반지하인지라 물은 이제 벌써 허리까지 차올랐다. 바깥은 이미 무릎
까지 물이 오르고 있었다. 3층에 올라가서 비가 좀 잦아지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났나? 물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주인 아저씨는 펌프를
빌리러 가신다고 나가셨다. 우리는 그동안 계속 물을 퍼냈다. 물을 퍼내
면서 바깥에 있는 하수도를 보며, 지면에서 수위가 얼마나 내려가나를 가
늠하다가 안으로 들어가서 막아놓았던 하수구를 열었다. 예상대로 물은
하수도로 내려갔다. 옆방도 그렇게 막아놓았던 하수구를 열고, 물을 계속
퍼냈다. 몇시간을 그렇게 물을 퍼냈나? 물은 그리 쉽게 줄어들지 않았지
만 줄어들긴 했다. 마침내 펌프가 도착했고,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잠깐
다른 집들을 둘러보았는데, 반지하나 지하에 있는 방들은 모두 흙탕물이
가득했다. 같이 둘러보며, 친구는 다시는 반지하 방에서 살지 않겠다고
이야기 했다. 몇시간이 흐르는 동안 계속 양동이와 바가지로 물을 퍼냈고,
펌프도 계속 물을 뿜어냈다. 오후 4시반쯤 물이 거의 다 빠졌다. 물이 거
의 빠지자, 방에 들어가서 둥둥 떠다니던 장판을 모두 걷어버리고,
호스로 물을 뿌리며 청소하고, 바닥에 가라앉은 흙들을 쓸어담고, 젖어
버린 물건을 바깥으로 내놓았다. 한가지 말을 안한게 있는데, 그것은 정
화조가 넘쳤다는 사실이다. (정화조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다 알 것이다.)
하여간 정화조가 넘친 물,더하기 하수구에서 역류한 물,더하기 빗물과
흙탕물 이 네가지 물 속에서 중노동(?)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무
렵, 물에 젖은 물건 중 버릴 것을 과감히 버리고, 흙 뭍은 옷들을 헹구고
있을때, 친구의 동생이 막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왔다. 여자친구와 함께.
우리의 모습을 보고 몇가지를 물어보고나서 바로 함께 정리에 들어갔다.
정리를 하는 중에, 이번 사건이 지하철 공사를 하는 L모 건설(우리나라
대기업 중 하나의 계열사)에 원인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주인 아
저씨가 석관동에서 25년동안 살 동안 이런 일은 없었다며,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주민들과 함께 현장사무소에 갔더니 책임
자인 현장소장은 이미 자취를 감췄고, 모두 무책임한 태도로 주민들을
대하는 것이었다. 경찰이 중간에서 중재를 했지만, 주위는 금새 소란스러
워졌다. 책임자를 대려오라고 소리치는 주민들을 보며 친구는 그만 돌아
가자고 했다. 동사무소에 가서 재해신고를 하며, 이번 일이 L모건설에 있
다는 말이 있던데 혹시 무슨 말인지 아느냐고 유도신문을 했더니, 접수하
는 아가씨는 그렇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정리를 하면서, 사진을 몇장 찍고, 임시 처소인 석관고등학교 체육관에
가서 적십자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하고(중고등학교 때 냈던 적십자회비
를 이렇게 돌려받는군), 스티로플이 깔려 있는 체육관 바닥에 잠시 누워
있다가 동생에게 친구를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생과 함께 있는 편이 좋을 듯 해서 그렇게
했다. 오는 길에도 차가 막혀서 평소에 두배되는 돈을 내고, 집에 돌아와
서 몸을 씻고, 잠을 청했다. 힘든 하루였다.
– 늘 즐거운 한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