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현 (2003-06-11 21:26:24)
흠.. 간만에 들어와 보는군…
며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기에….
근데 말이죠…. 힛..
예수는 죄가 없을까요…. 예수는 아무 죄없이 그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죄를 대속 하신 것일까..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는 죄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죽은 것이라고..
예수가 죽기 직전..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했다고 한다. 예수는 성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원죄에 대한 대속의 의미가 있다면, 예수가 그것을 모르고 그렇게 죽어 갔을까?
나는 단언 하건데 예수는 어느 정도 전후 사정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정도는 되어야 성인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뜻을 가지 셨다면.. 영광스럽게 죽을 수도 있지 않는가? 그러할진데 그는 왜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고 외쳤을까?
또 한가지, 죽음이라는것을 한번 생각해보자.. 불교에서는 윤회를 한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윤회는 인정을 하지 않지만 죽어서 하나님 곁에 간다고 믿는다. 그럼.. 죽음이 과연 인간의 죄를 대속할 만한 행위가 될까? 그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인데..
그럼 예수는 어떤 죄를 지었는가?
내 생각에는 예수는 절대자(즉, 하나님, 하느님, 하늘님, 한얼님 등등으로 불리시는)의 존재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 잘몰이 크다. 성경을 보면 절대자 하나님과 이스라엘 수호신 여호와의 존재가 같은 분으로 혼란을 격고 있다. 나는 이 두분은 결코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지 안는다. 이유로는, 여호와 스스로가 밝혔다. “나는 이스라엘의 수호신이다” 라고, 그리고 또 나는 “질투와 ? 의 신이다”라고..
생각해 보자, 이 우주의 절대자라는 분이 무엇이 부족하여 질투를 하겠는가. 누가 부러워서 질투를 할 것인가. 무소 블능, 무소부지, 무소불위의 존재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절대자에 대한 격하가 아닐까.. 절대자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예수는 응당 이 두분의 존재를 분명하게 밝혀 주셔야 했었다. 이렇게 하지 못함으로써의 결과는 참혹하다. 여호와가 말씀하시기를 “나 아닌 신은 믿지 말라”라고 했다. 이 한마디로 인해 기독교는 다는 어떤 종교와도 융합되지 못하고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의 거의 모든 전쟁에는 기독교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 예수 이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었는가. 그를 생각해 보면 예수의 죄는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이상 예수를 지상에 두지 못하고 대려 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3대 성인이라고 하는 예수, 석가, 공자 중.. 오직 예수만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 하였다.
이희용 (2003-06-15 06:18:56)
청와형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__^
성경을 읽어보시면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일일히 형의 생각에 대한 답글을 달기보다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몇 구절을 옮깁니다.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이 온전하고 완전한 지식으로 커나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몸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구약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이 오기 700여년 전에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 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는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호와 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들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이사야 53:4-1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 3:13, 신명기 21:23 참조)”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과 자신이 어떤 목적으로 죽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4-16 민수기 21:4-9참조)”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자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 사람들을 물게 했다.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달라고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장대 위에 구리로 만든 뱀을 달아 올리라고 한다 모세가 장대 위에 놋뱀을 달아 올리자 그것을 본 사람은 목숨을 잃지 않았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
예수님은 그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맞이해야 하는 죽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잡혀가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합니다.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태복음 26:39)
그리고 잡혀간 뒤 밤새 취조와 재판과 희롱을 받은 후 로마사회에서도 끔찍하게 여기는 십자가형을 선고받습니다. 당시 십자가형은 반역자나 극악범에게 처하는 형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달려야 할 십자가를 짊어지고 채찍에 맞으며 골고다 언덕에 이르러 결국 십자가에 못박힙니다.
그를 3년 동안이나 따랐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이미 뿔뿔이 도망쳐 흩어진 상태고 그를 따르던 몇몇 여인들과 그의 제자 요한이 군중 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린 후 3시간이 흘렀습니다.
마태복음 27:45에 보면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태인의 시간은 아침 6시부터 시작합니다. 정오부터 온땅에 어둠이 깔려 오후 3시까지 어어졌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자기 아들의 죽음을 외면하기 위해서 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때 예수님은 마태복음 27:46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칩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은 왜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하신 것을 괴로워 한 것일까요? 그것은 요한복음 8:29에 나타난 친밀한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심판자와 죄인의 관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저주받은 자로서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진 죄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아들인 예수님이 아버지였던 하나님과 단절되고 만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그토록 괴로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절망과 좌절로 끝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좀더 당당하게 영광스럽게 죽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은 그가 마지막으로 외친 말을 알지 못한데서 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뜻을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룬 것입니다. 그의 전 생애, 33년간의 생애 속에서 목적된 바를 다 이룬 것입니다. 과연 우리 중에 누가 죽으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 19:30)” (요한복음 17:4, 사도행전 13:29, 로마서 3:24,25참조)
예수님이 죽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졌고,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고 바위가 터졌습니다. 구약에서 바위는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심장이 터진 것이지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하나님은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대신 죽임으로 죄값을 치루게 하셨습니다. 아들을 대신 죽이기까지 이처럼 우리를 사랑한 것입니다. 부패하고 나약한 죄인들을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에 철저히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
예수님은 이렇게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소위 성현이라고 불리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었던 예수님이 죽은지 3일후에 다시 살아난 사건이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사건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죽어버렸고,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예수의 부활이 있었기에 두려워 떨던 제자들이, 바로 예수가 우리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목숨을 버리기까지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활은 가장 많은 증인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굳이 유태인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죠. 부활의 의미는 바로 예수님이 죽음과 죄의 권세를 정복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한 주장을 그를 다시 살림으로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곧 그가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메시야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확인시킨 사건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4)”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로마서 4:25)”
또한 부활의 의미는 예수님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우리도 또한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되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린도전서 6:13)”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로마서 8:10-11)”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자 그럼 이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왜 피흘림이 절대로 필요했는지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제사를 통해서 사람들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이처럼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여, 속죄제물이 피를 흘림으로 죄를 대속하는 것입니다.
그 역할을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처음 본 장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한복음 1:29)”
세례 요한은 선지자로서 예수님이 세상 죄를 대신하여 죽어야 할 속죄제물임을 간파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단번에 영원하고 온전한 제사로 자신의 몸을 드린 것입니다.
자 이제 인간의 모습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것이 성경의 입장이자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 시편 14:1-3)”
이 사실에 동의하십니까? 우리가 세운 윤리법이 불교의 8정도나 회교의 5대 행동조항이 되었든 우리는 그 기준을 지키지 못합니다. 아무리 도덕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엄격한 자기비판 앞에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죄를 가진 인간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자신을 속박시키며, 다른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원죄를 가진 인간의 속성인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세상을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죽고나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품에 돌아갈까요?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6)”
즉,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죽으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말입니다. 즉 모두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스로 노력하고 자신을 수양함으로 완전해질 수 있을까요. 인간 스스로가 부족하고 죄인임을 알고, 매일 매일 느끼는데, 어떻게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죠. 여기에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로마서 3:23-24)”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루셨고,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너는 이제부터 의롭다”고 칭하신 것입니다. 노예시장에서 돈을 대신 지불하고 노예문서를 찢어버림으로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되는 것, 하나님이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우리에게 끼워주심으로서 아들 딸을 삼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그가 나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못박혀 대신 죽음으로 나의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데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
구원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든 것을 처다보기만 해도 살았던 것 처럼 이제까지 나에게 향해 있던 눈을 하나님께로, 예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나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구원의 출발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나타내기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한복음 14:6-7)”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셨기에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드러내셨습니다.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사람들의 잘못이었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으니까요.
하나님은 이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이사야 59:1-2)
즉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어두운 눈과 둔한 귀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같은 잘못을 저질러선 안되겠죠.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내라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이일을 알려 주며 이전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겠느냐 그들이 그들의 증인을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을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7-13)”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이사야 55:6-7)”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예레미야 31:3)
이제 장황한 논쟁보다 실제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정말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내 마음 속에 모시기를 원한다면 아래 기도문을 진심으로 읽어보세요. 그러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을 맛보게 되고,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주 예수님, 저는 이제까지 제 뜻대로 행했음을 인정합니다. 저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제 죄를 뉘우칩니다.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킵니다.
주께서는 저를 위해 죽으셔서 저의 죄를 담당하셨음을 제가 믿습니다. 그 크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의 마음 문을 엽니다. 주님 들어오십시오. 제 구주로 들어오셔서 저를 다스려 주십시오. 저는 평생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섬기겠습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을 분을 위해서 아래와 같은 책을 소개합니다.
존 스토트, “기독교의 기본진리”
그럼 늘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 늘 즐거운 한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