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기(날짜상은 어제 일기)

병원 퇴원시 찍은 사진
2001-9-12 13:37 3.4Kg 정상분만

아, 먼저 두목, 섬마을형, 코니, 한~, 수옹형님, 그리고 푸름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늦게 집에 와서 지금 똥과 오줌으로 뭉친 배냇저고리를 열심히 빨은 뒤
삶아서 세탁기에 넣어 헹구고 탈수하는 중입니다.
오늘 하루는 정말 이야기 할 것이 많은 하루였습니다.
다 적는다면 아마도 열페이지가 넘어갈 것 같아 줄여서 간단히 적어보고자
합니다.

오늘 새벽도 어김없이 콩알이(아직 이름을 짓지 않았음)는 한 시간 간격으로
태변을 싸놓고 태변처리반인 나를 갈라지는 울음으로 불러재꼈다. 그래서 물티
슈로 닦아주었는데, 그게 좀 세게 문질렀나보다. 아주 서럽게 울어대서 달래느
라 애를 먹었다. 모유를 먹이기 위해 어제부터 보리차 끓인 물만 젖병에 담아
주곤 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입에 대지 않았다. 간호사실 옆의 주방에 가서
흑설탕을 두 숟갈 넣고 먹여보니 그제야 꿀꺽꿀꺽 먹어댄다. 옆의 아내는 아
침에 일어나 녹초가 된 나에게 어제 콩알이가 잘 잤는지를 물어본다. 내가
콩알이의 오줌 똥을 돌볼 때(?) 아내는 곤히 잠들어 있었기에 콩알이가 잘 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어제와 마찬가지였어… 흠냐냐.”
11시에 간염접종을 맞게 하고 산후조리원에서 온 차를 타고 가기 전, 원장
선생님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신다. 먼저 아기 사진을 코닥 디지탈 카메라
로 찍은 후 우리 부부가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을 찍어주셨다. 1주일 후 진찰
받기 위해 올 땐 디스켓을 한 장 가져가야 할까 보다.
산후조리원에 1인실이 마련되지 않아 일단 하루만 2인실에서 보내기로 했다.
산후조리원에 도착해서 모유를 먹이고 싶으니까 보리차에 설탕만 약간 타서
주셨으면 한다고 이야기 했더니, 그렇게 하면 아기가 너무 힘들어서 안된다고
우유를 묽기 타서 주겠다고 한다. 몇차례 조율을 해서 그러기로 하긴 했지만,
모유 먹이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오늘이면 터져야 할 모유는 아직 나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맛사지를 미리 받고 싶다고 했더니, 맛자지
는 멍울이 생길 때부터 하면 된단다. 그러면 더 아프다, 나는 미리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몇가지 의견이 이처럼 서로 틀려 어떻게 협상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쨌든 모유를 우선으로 하되, 처음 며칠간은 모유의 양이 적
으니 우유를 섞어서 먹이자는 산후조리원의 타협안에 동의하는 것으로 일단락
을 지었다.
점심시간이 되서 아내를 조리원 내에 있는 식당으로 보냈다. 보호자의 식사는
제공되지 않기에 나는 바깥으로 나와 간단히 요기를 마친 뒤 돌아와 보니 아
내가 방안에 누워서 울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물어도 그냥 울기만 하는 것이
다. “누가 무슨 말을 했어?” 아내는 베게에 얼굴을 뭍고 고개만 젓는다.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어, “그럼 콩알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어?”하고 물었지만 다시
고개만 젓는다. “어디가 아퍼서 그래?” “아니야, 그냥 환경이 바뀌고 콩알이와
떨어지고, 희용씨가 오후에는 회사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막
나는 거야.” 직장에 이틀간 휴가를 내긴 했지만, 진행하던 프로젝트에서 담당
하던 일 때문에 오후쯤에는 직장에 들어가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음….
아내는 산후우울증의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나 오늘 회사 안갈께, 그리
고 콩알이는 바로 옆에 있는데… 뭘 그래. 자… 이제 울지 마.”하며 눈물을
닦아주는데도 계속 눈물을 흘린다. 울지 않으려고 해도 감정을 제어하기 힘들
고 눈물이 자꾸 나온단다. 아까 밥먹으러 식당에 가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울
었단다. “옆에서 왜 우냐고 물어보는 사람 없었어?” “응” 가슴이 아파왔다. 콩
알이를 보고싶다고 데려다 달라고 그런다. 간호조무사가 산후우울증이라며, 그
럴 수 있다면서 설명을 하려고 하기에 “저도 이미 안답니다. 위로해줘야죠…”
라고 짧게 말한 뒤, 서둘러 콩알이를 옆에 데려왔는데도 눈물은 계속 흘러내린
다. 말로만 듣던 산후우울증이란게 이런 거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을 하면서, 여
러가지 말로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사실 힘들게 출산을 했는데, 옆에 있던 사
람이 어디 간다고 하고(비록 잠깐이라 하더라도), 옆에 있어줄 사람도 없고, 옆
에 있던 아이마저 떨어져 있다면(비록 옆방이라도), 나라도 우울하고 슬펐을 것
이다. 그러고 있는데, 마침 맛사지를 해주는 분이 들어왔다. 오늘 들어왔지요?
맛사지를 할껀가요? 묻는다. 내가 어서 해주세요. 맛사지 종류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한다. 맛사지사는 자기는 다른 산후조리원에서 무료로 해주는 맛사지와
는 다르다며 차별성을 주장했다. 대충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경혈을 풀어주고 경
락을 제대로 자극한다나…. 보아하니 고단수 세일즈우먼의 냄새가 마구 풍긴다.
하지만 다 그런 것 아닌가? 나는 젖이 돌아야 하니까 가슴 맛사지를 먼저 해주십
사 했다. 그 다음 발 맛사지도 추가로 부탁했다. 가슴 맛사지가 아기 낳는 것 보
다 더 아플 꺼라고 하자, 아내는 “저도 그 이야기는 들었어요. 근데 정말 그렇게
아프면 어떡하죠?”하며 걱정을 한다. 맛사지사는 나보고 아내의 팔목을 붙잡아
주라고 하곤, 수건을 둥글게 말더니 맛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마
구 쥐어짜는 것이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아내는 마구 발버둥을 치지만
아아, 그 맛사지사 끄떡없이 마구 쥐어짠다. 허걱… 이러다 사람 잡겠네. 생각
하는 찰나, 뭔가가 가슴에서 뿜어져 나왔다. 와우, 드디어 젖이 터졌던 것이다.
그 다음 맛사지사는 아주 간단하게 다른 쪽도 마찬가지로 젖을 터트렸다. 그리곤
내일 한번 더 맛사지를 할 껀데 내일이 피크라고, 더 아플 꺼라고 겁을 준다. 헛
헛헛…. 재미있는 맛사지사다. 젖을 터트린 맛사지사는 발 맛사지는 시원할 거라
며 이제 발맛사지를 하자고 했다. 크림을 바르고 발맛사지를 하는 동안 맛사지사
는 쉴새없이 이야기를 해댄다. 여기는 척추고, 여기는 머리고, 여기는 단전이라
고….., 내가 옆에서 그에 맞추어 맞장구를 쳐대니, 무슨 일을 하시냐고, 어쩜
그렇게 잘 아느냐고 한다. 이건 어제 분만할때, 아내 옆에서 호흡법에 관해 이야
기해주는 나를 보며 간호사가 했던 대사와 동일했다. 나는 ‘다 그런거죠 뭐…들
은 풍월이 있는데, 그리고 원래 이런덴 제가 또 맞장구를 잘 치지요. 으하하하’
속으로 이렇게 대답할까 하다가 겉으론 “그냥 조금 알지요.”라며 빙긋이 웃기만
했다. 어쨌든 맛사지를 하는데 정신이 팔려 아내의 우울한 마음은 잠시 사라진
것 같았다.
젖이 터진 후 나는 아내에게 일단 콩알이에게 젖을 물려보자고 했다. 콩알이
를 데려와 젖을 물리긴 했는데, 이거 젖이 나오는지 안나오는지를 모르겠는 것
이다. 콩알이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여간 양쪽으로 번갈아 가며
물리긴 했는데, 저녁시간이 되서 그만 두어야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콩알이를 다시 데려와 눕혀놓고, 아내에게 유축기를 사용해
서 초유를 좀 뽑아오라고 했다. 티비에서는 프레스플라워인가 뭔가를 만드는 법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방 올 줄 알았던 아내가 티비 프로가 끝날 때
까지 안오는 것이다. 그동안 콩알이는 배변관리사를 다시 만난 기념으로 멋지게
생긴 물똥을 선사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유축기로 젖을 뽑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어쨌건, 조금 더 있으니 아내는 마치 바나나우유 빛깔
이 나는 초유를 우윳병에 담아왔다. 그것도 한쪽편에서만 만들어온 거란다. 내가
이미 잠이 들려고 하는 콩알이에게 초유를 먹이는 동안 아내는 다른 쪽도 만들어
오겠다고 나갔다. 결과는 대성공, 양쪽 모두 합해 60ml쯤 먹인 것 같다. 내일이
면 황금똥을 싸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이 기뻐라. 하하하.
2인실이라 밤동안 함께 있기가 껄끄러워, 집에 가봐야 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괜찮다고, 초유를 먹이는데 성공해서 이제 우울한 기분은 모두 사라졌다고 그런
다. 잘 된 일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자식 낳아볼 때쯤 부모님 마음을 안다는 말은 정작 경험해
보아야만 그 뜻을 알 수 있는 말인 듯 싶다. 아빠가 되기 전에 이 말은 그저 그러
려니 하는 짐작의 경구일 뿐이지만, 아이를 낳아 밤을 새워가며 기저귀를 갈아보
고, 먹을 것을 챙기다보니 이 말이 정작 피부에 팍팍 와닿는 말이 되었다. 내가
간난아기였을 때 우리 아버지도 같은 느낌을 가지고, 지금의 나처럼 밤을 새우며
나를 대하셨을 거란 생각에 무지 감사한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난다는 것이다. 그
리고 또 한가지, 어떤 사람들은 “내가 내 자식 오줌똥 다 받아냈어”라고 마치 자
기가 다 했다는 양 자랑하기도 하지만, 결코 내가 기저귀 갈아주고 뭐뭐를 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옆에 있으면
당연히 사랑스럽고, 당연히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이고, 졸린 눈으로 똥을 닦아주면
서도 헤헤거리는 것이다.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피곤을
잊고(정말 신기하게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안든다) 집에 와서 즐거운 마음으로 빨
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늘 즐거운, 콩알이 아빠 한빛.

PS. 그래서 저는 섬마을 형을 존경한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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