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중에서 또 다른 자신과의 대면에 ..

이 글을 읽기 전 A.I.를 보지 않으신 분은 읽지 마시기 바란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혹시나 줄거리를 미리 알게 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미의 반감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는 A.I.가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_-; )
물론 이 글은 A.I.의 줄거리를 이야기 하는 글이 아니라 그 가
운데 등장하는 수많은 ‘코드’ 중 한가지 ‘코드’에 대한 글이긴
하지만, 어떠한 것을 직접 접하기 이전에 가지게 되는 선험적
가치관으로 인해,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잃는
것을 저 스스로도 싫어하기에 이런 말씀을 미리 드리는 겁니다.
(음 이런 말을 하니 뭔가 대단한 말을 하려는 것 같군… 별것
아닌데… 흠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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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인간론을
동화처럼 풀어나간 영화인 A.I.를 보면 자신과 대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주인공은 극도의 분노와 공격성을 보인다. 이러한 공격성은 자신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존재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사전에 아버지가 그에 대해 ‘사랑을 느낄 줄 안다면 분노도 느낄 수
있지 않는가’라는 말로 어느 정도 암시를 주긴 했지만 그 정도의 뛰
어난(?) 공격성을 보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좀 의외였다(아이작 아시
모프의 로봇 3원칙도 무시하다니… 물론 무시한 것은 아니군.. 대상
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주인공은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
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한 것이란 말인가? 물론 위의 경우는 로봇 3원
칙이 적용되었다는 가정 하에서만 가능한 추론이지만…..). 소설 속
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예를 들어 에드거 앨런
포우의 소설 ‘윌리엄 윌슨’에서는 또 다른 자기자신을 살해함으로 파
국을 맞는 인물이 등장하며, 근래 유행하는(이 유행은 마치 어릴적 비
행접시와 외계인으로 대표되던 SF물과 네스호의 네시라든가 설인, 귀
신, 심령물로 대표되던 괴기물에 흥분하곤 했던 내 또래 아이들의 기
억 속에 남아 있는 신비함에 대한 동경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비주류(?)
문화중 한 줄기를 이루며 제법 오래 갈 것으로 여겨진다) 환타지 소설
중 ‘드래곤 라자’에서도 그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드래곤 라자에서
는 어떤 숲에 들어가면 자아가 여러 개로 나눠져버리는데, 또 다른 자
아를 발견했을때 사람들은 서로 공격하고 결국 살해하고 마는 모습이
그려졌다. 즉, 사람들은 또 다른 자기와 만나게 되면 공격성을 갖는다
는 해석을 담고 있다.

두번째로 자아와의 대면에 대한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동화 ‘왕자와 거
지’, 영화 ‘6번째 날’등으로, 이 부류는 누군가 하나가 확실히 가짜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에 독자나 관객은 한편으로 편안하게 줄거리를 따라
갈 수 있지만, 주인공은 그렇기 때문에 ‘진짜냐 가짜냐’의 진위를 판단
해야 하는 문제를 걸머지게 된다.

이와 같이 ‘또 다른 자기와의 만남’은 일종의 상징적 코드로 문화전반에
걸쳐 여기저기에 녹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자기와의 만남’
이라는 주제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서처럼, 자아분열과도 밀접한 관
련이 있다고 보며, 좀더 확대해보면 사이코 드라마 ‘사이빌’에서 나오는
다중인격과도 관련이 있는 주제인 것이다.
‘또 다른 자아와의 대면’이라는 코드들을 살펴보면 크게 ‘자아의 분리’와
‘자아의 진위문제’로 구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전자를 ‘정신의 분리’,
후자를 ‘육체의 분리’라는 범주로 구분해 볼 수도 있다.

‘또 다른 자아와의 대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포우의 ‘윌리엄 윌슨’ – 또 다른 자아를 인식하지 못함 -> 살해
* A.I. – 또 다른 자아를 인정하지 않음 -> 파괴(살해)
* 왕자와 거지 – 가짜냐 진짜냐의 문제, 왕자임을 밝힘 -> 화해
* 6번째 날 – 가짜냐 진짜냐의 문제 -> 공존
* 드래곤 라자 – 다른 자아를 인정할 경우 -> 합체,
다른 자아를 부정할 경우 -> 살해

그렇다면 만약 당신이 당신과 똑같은 판박이를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했다면?
그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부정하고 무시할 것인가?
그가 진짜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어쩌면 당신은 ‘나에게 쌍동이 형제가 있었나?’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만약 모든 인간이 다 같은 모습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남과의 다름을 추구하는 어떤 이는 최신의 패션가면을 만들어 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당신은 당신의 판박이를 마주하고 태연하게 웃을 수 있을까?

신이 인간의 모습을 모두 다르게 만든 것은 그런 의미에서 축복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존엄성은 그 인간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유일성과 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귀중하다는 사상적 근거에 기초한다.

나는 나이며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토이스토리의 버즈인형처럼 진열된 수많은 자기를 보며 주인공은 같은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똑같은 자기(로봇)와는 다른 자기(인간)를 꿈꿨던 것
인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한 소중한 존재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 늘 즐거운 한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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