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는 저녁식사를 마치기까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간혹 엄마가 음식
을 더 먹을 건지 물어보긴 했지만, 라오는 골돌히 꿈에 만났던 소녀를 생각하느라
건성으로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라오는 식사가 끝난 뒤 바깥 뜰로 나갔습니다. 어둠
이 깔려 있는 뜰에는 간간히 풀벌레가 울고 있었습니다. 라오는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별들은 깊은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나타내고 있었습
니다. 라오는 별을 하나 하나 세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우주 가운데 떠있다는 십의
이십이승 정도 되는 별들 가운데 지금 라오가 셀 수 있는 별들은 오십여개에 불과했
습니다. 라오는 별이 반짝이는 것을 보며 마치 꿈속에서 만난 소녀의 눈동자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 한번의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이 너무 짧았기에 다시 만나고 싶
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오는 쪼그리고 앉아 돌맹이 하나를 주워 땅바닥에 그림
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소녀의 얼굴이었지요. 그러다가 라오는 뭔가 생각이
난듯 문득 그리던 손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달려가 손발을 씻고 이층 자기
방으로 부리나케 올라갔습니다. 라오는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오동나무 침대에 놓인
베개를 추스리고, 잠을 청했지만 잠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라오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 벌떡 일어나서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가 보기도 하고, 엄마에게 부탁해
서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마시기도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머리는 맑아지고, 잠은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목장 울타리를 뛰어넘는 양을 세어보기도 했지만 수 백마
리의 양이 울타리를 뛰어넘은 뒤에도 잠은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계의 초침 소
리를 세어보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라오의 잠을 방해하는 것 같았습
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라오는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라오야, 일어나렴.”
엄마의 목소리가 라오를 깨우고 있었습니다.
라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라오가 눈을 떴을 때 햇살은 라오의 방에
가득 비취고 있었습니다.
“흐아암, 벌써 아침이에요?”
“그래, 어서 일어나렴. 학교갈 시간이 다 됐단다. 어서 세수하고 아침 먹으러 내려
오려무나.”
엄마는 아랫층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엄마가 내려간 뒤 라오는 잠시 멍한 상태로 앉아 있다가 엄마가 떠놓은 세숫물에 세
수를 하고 아랫층에 내려가 밥을 먹은 뒤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학교
로 가는 길에 라오는 근처에 사는 친구 샤마트를 만났습니다.
“샤마트, 안녕?”
“야 반갑다, 라오? 잘 잤니?”
“응, 그럭저럭, 근데 넌 오늘따라 왜 날 보고 빙글빙글 웃냐?”
“응, 어제 저녁 꿈에 너를 아는 누굴 만났거든.”
“꿈에 나를 아는 누굴 만났다구?”
“응, 그렇다니까. 근데, 아참 넌 꿈 꿔본 적이 없다고 그랬지?”
“아니, 나도 사실 어제 오후에 꿈을 꿨어.”
“그래? 야, 드디어 너도 꿈을 꾸게 됐구나. 축하해. 그래, 어떤 꿈이었는데?”
샤마트는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연신 지어댔습니다.
“그냥 숲속을 거닐다 언덕에 올랐는데, 수정처럼 맑은 기둥이 보여서 그리로 내려가
다가…..”
“어떤 소녀를 만났지?”
“엉? 그걸 어떻게 알아?”
“사실은 나도 어제 똑같은 꿈을 꿨거든.”
“그래?”
“응, 머리를 땋은 여자애였지?”
“그래 맞아. 근데 걔랑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가 저녁식사를 하라고 날 깨우는 바람
에 그만 헤어지고 말았어”
“후후…. 그래서 그랬구나.”
“뭐가?”
“응, 내가 어제 걔를 만났는데, 걔가 그러더라. 너랑 이야기를 나누다 네가 갑자기
눈 앞에서 사라졌다고. 눈 앞에서 사라질 때 라오라는 이름이 불려졌다고 하더라.
라오라면, 내 친구라고 하니깐 이 얘기를 전해주라고 하더라.”
“무슨 얘긴데?”
“응, 널 다시 한번 만나고 싶대. 하하.”
라오는 그 얘기를 듣고 귀 밑이 발그레해졌습니다.
“오잉? 라오, 너 그 여자애를 좋아하는구낫.”
“아냐. 난, 걔 이름도 모르는데…..”
“그래? 에이 설마.”
“정말이야.”
“음, 그래? 거 참 안됐네~”
“뭐가 안됐어?”
“나도 걔 이름이 뭔지 안물어 봤는데….. 너 걔를 만나고 싶지?”
“아냐.”
“에이, 거짓말…., 느흐흐, 솔직히 말해봐. 내가 소문내지는 않을테니.”
“음…., 그래. 솔직히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 그런데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지?”
“글쎄….. 내 경험에 의하면, 꿈이란게 워낙 변덕스러워서 같은 곳에 다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거든. 하지만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잠자기 전에 마음
속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거야. 그러면 꿈 속에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거든. 물론 항상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야. 근데, 너는 걔 이름을 모른다고 했
으니 다시 만날 가능성이 더 줄어드는 거지. 그래서 내가 안됐다고 한 거야.”
“…..”
“야, 힘내, 그깟 꿈 속에서 만난 애 땜에 그렇게 풀이 죽을 건 없잖아.” 샤마트는
라오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습니다.
“휴… 그래.”
라오는 샤마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느덧 학교에 이르렀고, 둘은 서로 다른 반이
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헤어지며 샤마트는 다시 꿈 속에서 그 애를 만나면 이름을
물어봐 주겠노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