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즈음에….

뭐 아직 마흔은 안되었지만, 서른무렵엔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라는 책에 끌렸던 적이 있다.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올해 나이가 얼마인지 어느덧 잊어버렸고, 나날이 쌓여가는 삶의 질곡 속에서 내 나이테를 하나 하나 세어볼 여유도 사라져갔다. 살면서 한번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기가 있다. 지금이 그런 때인 것 같다. 매일같이 산본에서 파견지인 양주까지 회사차를 몰고 하루 세시간 반 정도를 도로에 쏟아부으며 달릴 때,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도 절반 이상 읽지 못할 때, 한때 출퇴근할 때 쓰던 자전거가 베란다에 우두커니 세워져 있을 때, 2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진행하는 것 외에 추가적인 제안작업을 하며 밤을 샐 때, 끊임없는 고객의 불만사항이 늘어날 때, 토요일까지 근무하고 새벽 1시반에 퇴근해서 아이들과 집사람의 잠든 모습을 볼 때, 아이가 전화해서 ‘아빠 보고 싶어’라고 할 때,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잃어버리는 것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도 약해지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서른 즈음에 바라봤던 마흔 즈음의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힘든 상황 속에서 그대로 길들여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힘들다’는 것을 하나의 명제로 삼고 그것을 모든 상황에 대한 해명과 변명으로 방패막이 삼고 있었다는 말이다. 힘듬에 안주해버리는 상황 말이다. 그런데 조금은 그런 상황을 극복해보고자 노력해야 할 것은 아닌가. 심리학에 ‘선택적 주의’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선택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인데, 결국 모든 것을 다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인간이 가진 인식의 한계, 환경의 울타리와 테두리에 갇혀있는 모습을 나 스스로의 모습 속에서 문득 문득 발견하게 된다. 나 또한 현실의 팍팍함 속에서 파묻혀서 한 걸음 물러서서 현실을 관조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오늘 같은 이 새벽에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 하여간 화이팅이다. 노력하고 극복해보는 거다. 그래서 쉰이 될 때 마흔 즈음을 바라보며 한번쯤 웃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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