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대하여

흔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묻는 질문이 “커서 넌 뭐가 되고 싶으냐?”이다.
이 질문을 받은 아이들은 대체로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의 범위 안에서 “나는 이러이러한 직업(일)을 가지겠다(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른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쉽게 답하지 못한다. 크면서 일상생활에 파묻히기도 하고, 자신이 가졌던 목표가 자신의 상황(처지)나 노력의 결과와 합치되지 못하는 것을 많이 경험하기 때문이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승리보다는 좌절이 많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한편, 어렸을때의 꿈을 달성한 사람은 어떨까? 꿈을 못 이룬 사람보다는 낫겠지만, 어렸을 때 의미있다 싶은 꿈이 실제로는 또 다른 노동의 굴레 속에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이런 상실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이야기 하곤 한다.
결국 따지고 보면 자기를 위한 꿈은 엄연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꿈 자체를 타인을 향한 꿈으로 확장시키면 어떨까.
미국에서 주차건물전문설계회사인 팀하스(TimHaahs)의 회장인 하형록씨는 회사의 모토를 “우리는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로 삼아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심장이상증세를 겪고 두번의 심장이식 수술을 거치며 그의 삶은 자신을 위한 삶에서 타인을 위한 삶으로의 변화를 맞이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소명을 붙들 때 은사도 빛난다] 요즘 젊은 이들 사이에서 은사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 그래서 피아노에 은사가 있는 사람은 피아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종종 그에게 피아노를 포기하고 그냥 평범한 목회자가 되라고 하신다. 그러면 ‘은사는 뭔가요?’하는 의문과 함께 믿음이 흔들리고 하나님에 대해 마음이 어려워진다. 하나님은 우리의 은사를 사용하실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 우리는 열정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그것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이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어부였다.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나는 다른 시각으로 본다. 그는 직책이 어부였지만 고기잡는 것에 은사가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잡는 것(catch)에 은사가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이 ‘catch’의 은사를 놓고 주도권 싸움을 했다. 그러다가 자기가 그물을 던진 방향이 아닌 예수님이 던지라 하신 곳에서 많은 고기를 잡자 그는 비로소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그는 고기가 아닌 예수님을 ‘잡았고’ 예수님은 그때 ‘사람을 낚는(잡는) 사람’이 되라고 그의 ‘잡는’ 은사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셨다. 만일 베드로가 사막에 있었다면 뱀이나 전갈을 잡는 명수가 되었을 것이다. 산에서 살았다면 에서를 능가하는 사슴사냥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겐 그런 ‘잡는’은사가 있었다. 그가 어부가 된 것은 갈릴리 호숫가에 살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런 은사가 있다. 하지만 이 은사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열심히 달려가면 실패한다. 많은 경우, 실패하고 나서야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가 가진 은사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이런 실수를 줄이려면 먼저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은사를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베드로를 어부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잡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흔히 아이들은 ‘커서 뭐가 될래?’하고 물의면 ‘의사가 될래요’, ‘음악가가 될래요’하고 대답한다. 의사, 음악가라는 대상을 생각하면서 꿈을 키우는 것이다. 만일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가 ‘너는 치료하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하거나 ‘너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구나’하고 말하면 아이들은 같은 의사가 되고 같은 음악가가 되어도 진심으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애쓰는 의사가 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감동을 주기 위해 애쓰는 음악가가 된다. 더 나아가 사람을 치료하는 일은 의사 뿐 아니라 선교사나 목회자도 할 수 있다. 은사를 명사가 아닌 동사, 즉 행동으로 바라보고 표현할 때 더 넓은 선택을 할 수 있고 다양한 길을 볼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청년 실업이 많은 때라면 믿음의 젊은이들이 갈등과 고민이 많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크게 쓰임 받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를 나오고 스펙도 많이 쌓았는데 도무지 자기가 가고 싶어하는 데에선 오라는 데가 없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고, 어느날 갑자기 건강까지 무너지거나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감당키 어려운 시련까지 겹친다. 그런 과정을 거쳐 하나님은 나를 낯선 곳으로 인도하신다. 그 방향으로 바람이 분다. 그 지점에서 믿음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갈린다. 내 앞에 닥친 시련을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기 위해 펼쳐놓으신 에덴 동산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긴다. 마치 여호수아 군대가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과 같다. 물리를 전공해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나 직장이 없다면 그 흐르는 물에 몸을 싣고 가는 것이다. 이름도 없는 청소회사에 들어가서 쓰레기를 처리하면서 사람들을 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경영자를 섬기고 고객을 섬기다 보면 그곳에서 새로운 문이 열린다. 청소회사 사장의 신뢰를 받고 고객의 인정을 받아서 새로운 문이 열려 달려왔더니 그 길이 바로 자신이 원하던 길임을 나중에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심어 놓으신 은사는 바로 그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창조력은 허무맹랑한 공상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다. 아주 실질적이고 경제적인 것에서 창조력은 빛을 발한다. 일부 소수의 구미에만 맞추는 것은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큰 축복으로 변한다. 국립건축과학원 이사 선임건으로 연방정부의 청문회에 갔을 때, 내게 무슨 일에 열정이 있느냐고 묻기에 나는 ‘조직능력’이라고 대답했다. 정확히는 ‘나에게 주신 조직력의 은사로 하나님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것이 나에게 주신 은사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직장생활을 할 때 상당히 큰 건물을 짓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설계부터 공사까지 다 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복잡했다. 건물 하나를 지으려면 몇만개의 부품이 들어가는데 그것을 일일이 선택해서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을 즐기기도 하거니와 쉽게 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언젠가 내가 ‘올림픽 코디네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가 주변 사람들이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왜 그렇게 복잡한 조직에서 일하고 싶어하느냐’고 물었다. 모두들 나를 비정상적으로 보는 듯한 눈빛을 보냈으나 나는 진심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그런 일을 좋아하도록 만드신 것이다. 사실 나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자격증이 있어서 이 일을 하게 되었지만, 만일 타고난 재능만 발휘할 수 있다면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하든 만족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가가 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적 피사체이지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심어 놓으신 진짜 능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종종 혼동해서 혼란에 빠지곤 한다. 은사는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의사가 되고 싶던 사람이 하나님께서 선교사나 목회자로 부르실 때도 그 뜻을 잘 이해하고 순종할 수 있게 된다.” P31:성경대로 비즈니스하기, 하형록, pp.197-201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기존 사업의 내용을 바꿔야 할 필요를 느낄 때로 나는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통보하지 않는다. 매니저들은 물론 모든 직원에게 이런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고 그랬을 때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이해시켜서 스스로 동참하도록 이끈다. 그래야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 기대감도 있고 의욕도 높아서 성공률이 높다.” P31:성경대로 비즈니스하기, 하형록,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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